우리나라 재판은 일반적으로 '3심제'입니다. 즉, 한 번의 재판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여 총 3번의 재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죠. 이에 따라 첫 번째 재판 결과에 불복하는 당사자는 2심 재판부에 이의 제기 즉, '항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소송절차란 참 까다롭지요. 아무리 1심 재판이 잘못되었어도, 항소하려는 사람은 법으로 정해진 기간 내에 항소를 제기해야 하고, 심지어 필요한 서류를 제때 제출하지 않으면 실제로 법적 쟁점을 다투어보기 전에 재판 절차 진행이 종료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재판의 효율성과 법적 안전성을 위해, 절차상 하자가 있어 재판이 종료되는 것은 당연히 법적 절차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의 과실이 아니라면요? 나아가 법으로 규정한 예외적인 사안에 대해 법원이 간과하여 항소기각결정이 확정된 경우, 해당 사건에 대해 다시 재판할 수는 없는 걸까요?
항소장 제출 기간 및 항소이유
1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어 항소를 제기하려고 준비 중이신가요? 그렇다면 항소인은 7일 이내에 항소장을 제출하여야 합니다. 또한 항소를 제기할 때에는 그 이유를 밝혀야 하는데요, 항소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형사소송법 제361조의5)
**항소 이유**
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ㆍ법률ㆍ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때
나. 판결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다. 관할 또는 관할위반의 인정이 법률에 위반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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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이유서 제출 기간이 지났대요
제출 안 했다고 기각된다는데요?
(형사소송법 제361조의2, 제361조의 3, 제361조의 4 참조)
항소장 제출로 법원이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을 항소인과 상대방에게 송달하게 되면, 항소인(또는 변호인)분들은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여야 합니다. 만약 항소이유서를 제출 기간 내에 제출하지 않는다면 법원에서는 해당 사건의 항고를 기각 결정하여야 하지요.
다만, 사안에 따라 직권조사 사유가 발생하기도 하는데요. 또는 항소장에 항소이유까지 기재하여 제출하시기도 하고요. 이럴 때에는 항소를 유지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법원의 통지와 송달 여부
(형사소송법 제361조의2, 민사소송법 제182조, 제183조 참조)
항소이유서 제출기간은 '통지를 받은 날'부터 진행되기 때문에, 항소인이 언제 해당 통지서를 송달받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의 서류를 송달받을 사람의 주소ㆍ거소ㆍ영업소 또는 사무소로 보내는데요. 만약 위 통지를 받아야 할 사람이 체포나 구속으로 수감되어 있다면 일반적인 송달을 통해 통지를 받을 수 없겠죠.
이러한 이유로 민사소송법에서는 교도소ㆍ구치소 또는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에 체포ㆍ구속 또는 유치된 사람에게 송달할 때에는 교도소ㆍ구치소 또는 국가경찰관서의 장에게 송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항소 사건의 당사자인 피고인이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있어 당사자가 아닌 검찰청 검사가 법원의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받은 경우에는 그 날부터 14일 이내에 피고인을 항소법원 소재지의 교도소 또는 구치소에 이송하여야 합니다. 항소를 할 수 있는 관할법원 쪽으로 옮긴다는 것이죠.
이렇듯 우리 법은 체포·구속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진행 중인 사건의 당사자라면 재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항소인의 체포나 구속 여부를 알지 못해 전에 살던 주거지에 송달하였고, 기간 내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사건을 항소기각 결정을 하였다면, 항소인은 같은 사건에 대해 다시 다툴 수 없을까요?
대법원 판례 : 항소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
대법원 2017모2162 결정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교도소·구치소 또는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에 수감된 사람에게 할 송달을 수감되기 전의 종전 주·거소에 한 경우 송달의 효력은 무효라고 봤습니다. 또한, 피고인의 수감 사실을 모른 상태로 종전 주·거소에 송달하였더라도 송달의 효력이 없다고 하였지요.
해당 사건에서 A씨는 제1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어 항소하였는데요, 이에 법원은 A씨가 항소장에 기재한 주소로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을 송달하였던 겁니다. 해당 통지서 등은 그 주소지에서 살고 계셨던 A씨의 어머니가 수령하였고 이런저런 상황을 모르셨던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신 것이죠.
그 후 20일 이내에 제출해야 했던 항소이유서를 제출하지 않아, 원심법원은 A씨의 항소를 기각하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A씨에게 그 날은 다른 형사사건으로 긴급체포되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고 징역 8개월의 형이 확정되던 날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형의 집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항소했던 사건이 기각됐었단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송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법원에 주장합니다.
이에 대법원은 "교도소·구치소 또는 국가경찰관서의 유치장에 수감된 사람에게 할 송달을 교도소·구치소 또는 국가경찰관서의 장에게 하지 않고 수감되기 전에 살던 주소지에 송달을 하였다면 무효이고, 법원이 피고인의 수감 사실을 모른 채 종전 주·거소에 송달하였다고 하여도 마찬가지로 송달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다."
라고 하며 A씨의 손을 들어주었지요.(대법원 82다카349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95모14 결정, 대법원 2007모777 결정 등)
이어서, “송달명의인(A씨)이 체포 또는 구속된 날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의 송달서류가 송달명의인의 종전 주·거소에 송달되었다면 그 송달의 효력 발생 여부는 체포 또는 구속된 시각과 송달된 시각의 선후에 의하여 결정하되, 그 선후관계가 명백하지 않다면 송달의 효력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A씨가 긴급 체포된 시각이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이 송달된 시각 이전이라면, A씨에 대한 송달은 적법한 것이 아니어서 효력이 없고, 소송기록접수통지서의 송달 자체가 부적법한 이상 항소이유서 제출 기간도 시작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죠.
그럼에도 법원이 A씨가 긴급체포된 시각과 소송기록접수통지서 등이 송달된 시각의 선후에 관한 심리를 하지 않은 채 A씨의 항소를 기각하는 결정을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고 본 것이네요. 이렇게 해당 사건은 원심법원으로 파기 환송되었고 A씨는 다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답니다.
글을 마치며
법률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항소 제기기간이나 항소이유서 제출 등 소송절차 진행과 관련된 법과는 거리가 멉니다. 실제로 다음 재판에서 승소할 확률이 높은 사건임에도 기간을 지키지 않거나 서류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아 재판이 종료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소송을 진행할 때 반드시 절차에 대한 유의사항을 살펴보셔야 합니다.
특히 앞서 본 판례처럼 소송 진행 중 기간 내 서류를 제출하지 못하여 재판이 종료되었으나 정당한 사유가 있고, 또 법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경우, 다시 재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으실 수도 있으니 쉽게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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