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많이들 들어보셨을 텐데요.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추행하는 행위를 말하죠. 그런데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갑남은 을녀의 직장상사입니다. 평소 을녀를 좋아하던 갑남은 어깨를 주물러준다면서 느닷없이 을녀의 어깨를 안마했습니다.
을녀는 불편했지만 좋은 의도이겠거니 싶어 별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을녀가 싫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갑남은 스킨십 수위를 높여 손바닥으로 허리를 쓸었습니다.
을녀가 몹시 당황하며 갑남을 보자 갑남은 윙크를 하며 가버립니다.
강제추행 사례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례처럼 추행행위를 당할 때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형법상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과연 피해자가 명백하게 거부하지 않았다고 강제추행이 되지 않는 걸까요? 강제추행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성립하는지, 판례는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강제추행죄의 성립요건
형법 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강제추행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폭행 또는 협박을 이용해 사람을 추행할 것’이라는 요건이 필요합니다.
객관적 구성요건으로 폭행과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하는 행위가 존재해야 하고, 주관적 구성요건으로 강제추행의 고의와 인식이 있어야 성립하게 돼요.
강제추행을 행하는 주체는 자연인이라면 누구나 될 수 있어요. 예컨대 여성이 남성을 강제추행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강제추행의 대상, 그 객체 또한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애매합니다. 폭행과 협박의 수위는 어느 정도여야 하며, 추행행위는 도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걸까요?
폭행의 정도
어느 정도여야 하나?
학설에 따르면,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은 상대가 반항을 하지 못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여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요.
그럼 우리 판례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판례는 강제추행죄에 있어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제압해야 할 수준에 이를 것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다면 힘의 대소강약을 묻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다는 자체로, 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폭행’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추행행위란
판례에 따르면, 추행행위는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객관적으로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일체의 행위라고 보고 있는데요. 예컨대 직장 상사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어깨를 주무른 행위도 추행이 될 수 있어요.
그렇다면 기습추행의 경우는 어떨까요?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강제추행을 한...’ 이라고 명시하고 있는데요. 반드시 폭행 내지 협박이 있은 후 추행행위가 있어야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는 걸까요?
판례는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한 후에 추행을 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로 인정되는 경우도 강제추행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상대방과 춤을 추다가 기습적으로 가슴을 만진 행위도 강제추행에 해당합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었는데도
강제추행죄가 될 수 있다?
[대법원 2020. 3. 26. 선고 2019도15994 판결]
X 씨는 Y 씨가 운영하는 주식회사 가맹점에서 일하는 직원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체 회사 회식이 있어서 X씨도 참석하게 되었고, 회식 후 뒤풀이로 직원들과 다 같이 노래방을 가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갑자기 Y 씨가 X 씨의 옆자리에 앉더니 X 씨의 볼에 느닷없이 입을 맞췄습니다. 그러더니 귓속말로 “힘든 일이 있으면 내게 다 말해.” 하면서 X 씨의 허벅지를 손으로 쓰다듬었습니다.
원심법원의 판단,
Y씨는 무죄!
실제 이 판례는 원심에서 Y 씨에 대해 강제추행죄를 부정했으나, 대법원에서 강제추행죄를 인정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한 경우였는데요.
원심 측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Y 씨에 대한 강제추행죄를 부정하였습니다.
첫째,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추행행위는 인정되지만, 폭행으로 인정될 만한 유형력의 행사가 없었고,
둘째, Y씨의 행위에 피해자가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을 볼 때, 비단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진 행위는 아니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하였는데요.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근거로 Y 씨에 대한 강제추행죄를 인정하였습니다.
첫째, 강제추행죄에서 의미하는 ‘폭행’은 반드시 상대를 제압할 정도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폭행 또는 협박을 한 후에 추행행위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즉, 폭행 또는 협박이 요건이 되기는 하지만, 그 정도를 판단함에 있어 '아주 적은 정도'라도 추행에 있어 '폭행'으로 인정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둘째,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양상은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 말은, 피해자가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논리가 전제 되는데요. 여기서 포인트는 바로 '피해자의 동의'입니다.
즉, 피해자의 성격과 당시의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거부를 할 수 없었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동의를 하지 않았다면 '강제'로 추행을 한 점이 인정된다는 뜻이죠.
글을 마치며
강제추행, 당하는 사람은 몹시 당황하고 놀라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강제추행을 한 자가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지위에 있는 사람이거나, 기습적으로 추행을 당한 경우에는 막상 고소해도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잘 모르실 텐데요.
고소해도 상대측에서"네가 거절하지 않았잖아!" 라며 뻔뻔하게 주장해 온다면? 오늘 알려드린 내용을 가해자에게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동의한 적 없다"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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