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정책 실패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입니다. 최근에는 계약갱신기간 연장과 임대료 인상 제한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혼란을 겪고 있죠.
주택을 임대하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일정액의 보증금을 내고 매달 임대료를 지불하는 월세와 목돈에 해당하는 전세금을 내고 별도의 월별 임대료는 지불하지 않는 전세가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 중 전세는 전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에만 있는 임대차 제도인데요.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물권 중 하나인 '전세권'과는 다른 제도입니다.
이러한 전세유형은 현재 많은 세입자들이 이용하고 있는데, 이번 관련 법 개정으로 전세시장에 매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향후 어떻게 전개될 진 모르지만 집 없는 분들의 설움이 더욱 커질 것 같아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근심을 담아 이번 포스트에서는 전세 세입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전세계약 이야기를 준비했는데요. 간단한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등장인물* 나대출 : 전세 세입자 모모카드 : 전세금대출업체 ※실제 사례를 이해를 돕기 위해 각색하였습니다. |
나대출 씨는 2015년 11월 전세자금 마련을 위해 모모카드와 2년간 7천100만원을 대출 받았는데요. 이를 통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아파트 전세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나 씨와 모모카드가 체결한 대출계약서에는 '대출 기간 종료로 대출금을 즉시 갚아야 할 때 모모카드측이 요구 시 아파트를 임대임인 LH에 즉시 명도한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쉽게 말해 대출 기간이 끝났을 때 모모카드가 원하면 나 씨가 아파트를 주인에게 넘기고 회수한 전세자금으로라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뜻이죠.
그로부터 2년 후 2017년 11월, 대출 기간이 끝났지만 나대출 씨는 모모카드에 대출금을 갚지 못했습니다. 이에 모모카드는 2018년 3월 나 씨에게 대출금 변제를 요구하는 최고장을 보냈는데요. 이때 대출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전세 아파트를 LH에 넘기고 대출금을 반환하라며 나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살고 있는 전셋집을 당장 비워줘야 하는 신세가 된 나대출 씨. 과연 법원은 어떻게 판단하였을까요? 나 씨는 대출계약서에 명시된 내용대로 전셋집을 반환해야 할까요?
법원의 판단
1심과 2심은 모모카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나 씨에게 대출금 변제를 명령하면서 아파트도 LH에 넘기라고 판결했죠. 특히 재판부는 나 씨와 LH 간 임대차 계약이 2018년 1월 종료됐다고 판단했습니다. LH가 나 씨에게 전세 보증금을 올린 갱신계약 조건을 제시했지만, 나 씨의 아무런 반응 없이 그대로 계약 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법원은 상고심에서 원심판결을 뒤엎었습니다. 나 씨가 비록 대출금은 갚아야 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전세 아파트를 비워줄 의무는 없다고 본 것인데요.
나 씨가 모모카드와 맺은 대출계약의 ‘대출금을 못 갚으면 전세 아파트를 임대인에게 넘길 수 있다’는 조항은 임차인의 주거 생활 안정이라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또한 대법원은 나 씨가 LH측이 계약 갱신 조건으로 제시한 보증금 차액을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 모두 낸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나 씨에게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려는 뜻이 있다고 본 것인데요.
이 경우 법에 따라 임대인(LH)은 표준임대차계약서 위반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아니면 전세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나 씨의 차액 납부행위는 곧 전세계약의 묵시적 갱신이라고 판단한 것이죠.
대법원 판결의 의미
주거의 평온은 헌법을 필두로 우리 법체계에서 가장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인권입니다. 살아갈 공간이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법의 요청으로 인해 민법상 비록 임대차계약이 끝났어도 임대인이 강제로 임차인을 퇴거시킬 수 없고 다만 명도소송을 거쳐야 하고요. 반대로 임대차계약이 끝났더라도 해당 주거공간에 임대인이 함부로 들어올 경우 형법상 주거침입죄가 성립하게 됩니다.
임대인의 소유권 및 재산권 행사와 임차인의 주거권 보호 중 무엇이 우선인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서로의 권리를 명백하게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당사자 모두 적절한 배려와 이해를 통해 만족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요.
이를 위해선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섣부른 정책의 남발보다는, 비록 조금 늦더라도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의 입장을 두루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현명한 발걸음이 필요할 것입니다.
'부동산소송 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도 해당 될까? 부동산소유권 이전등기 특별조치법 시행 (0) | 2020.09.25 |
---|---|
사실상 건물주가 건물이나 부지를 점유하고 있지 않은데, 부지가 된 토지의 점유를 인정하나요? (0) | 2020.09.18 |
돈을 내지 않은 최고가매수신고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한다면? (0) | 2020.07.02 |
임차인 우선변제권 조건에 보증금 완납이 필요할까? (0) | 2020.06.15 |
아파트 계약은 했는데,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0) | 2020.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