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많이 알려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다는 소식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오랫동안 미궁에 빠져있던 장기미제사건이 해결될 실마리를 찾은 기쁨도 잠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서 더 이상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이 허망함을 감추지 못했죠.
2007년 형사소송법의 전면개정으로 공소시효제도가 한층 강화되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도 성폭행 피해자 살인사건, 장애인이나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등 이름만 대면 국민 대부분이 알법한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잔인한 범죄가 공론화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습니다.
그에 따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어 형벌뿐만 아니라 공소시효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매번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조차 힘든 강력범죄들의 소식을 듣고서야 법이 바뀌는 걸 보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느낌이라 허탈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왕 고치게 된 외양간이 제대로 고쳐졌는지 또 다른 빈틈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더 이상의 비극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겠죠? 오늘은 법 개정으로 달라진 공소시효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공소시효는 왜 등장했나?
과학수사가 부족했던 때의 수사력 한계와
피의자의 생활 안정성 위해 도입된 제도
공소시효제도란 어떤 범죄가 발생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공소의 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 시효가 완성되면 국가의 형벌권이 완전히 소멸하게 되는데요. 공소시효가 완성되면 수사나 기소를 할 수 없고, 설령 기소를 한다 해도 법원으로부터 ‘면소판결’을 받게 됩니다.
공소시효가 생긴 배경은 이러합니다. 이전에는 범죄 발생 후 시간이 지나면 확보한 증거의 보존도 어렵고, 당시 사건을 목격한 사람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점 등 지금보다 과학수사가 발전하지 않았을 시절의 현실적 한계에 있었습니다.
또, 범인으로 확정받기 전까지는 수사망에서 계속 의심을 받는 피의자의 생활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죄형법정주의" 실천을 위한 목적도 있었죠.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버려 더 이상 손쓸 수 없어진 영구미제사건들이 쌓인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법률 선진국인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는 강력범죄에 한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공소시효제도에 대한 비판이 꾸준하게 제기되었습니다.
- 과학수사의 발달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법 개정
우리나라 역시도 이런 여론을 반영하여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기간을 늘렸습니다. 예를 들어 살인죄의 경우 2015년 전까지는 성범죄와 관련하여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만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았는데요. 2015년 개정 이후엔 모든 살인죄에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정범에 종속되는 종범은 죄질이 정범에 비해 가볍기 때문에 이 개정안에서는 제외되었죠. 그리고 2015년 이전에 발생한 살인죄 중 개정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면 개정 이후로도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공소시효, 어떻게 계산하나?
공소시효는 범죄가 종료된 이후부터 시작되고 공범의 경우 최종적으로 범죄행위를 종료한 자를 기준으로 기산합니다.
공소시효는 중간에 멈춰있기도 합니다. 검사가 공소제기를 하면 정지되는데, 만약 기소된 범죄혐의에 대해 공소기각이 나오거나 관할위반 재판이 확정된 경우에는 멈춰있던 공소시효기간이 다시 진행됩니다. 만약 범인은 여러 명인데 그중 한 명만 잡힌 경우엔 어떨까요?
다 같이 모의하고 행동해서 완성시킨 범죄인데 공소 정지는 다른 공범들에게도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수사기관에서 범인들 중 한 명만 잡아 공소를 제기하면 잡힌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공범자들에 대한 시효도 정지됩니다.
한편 공소시효기간만큼 수사를 피한다 해도 공소시효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수사를 피해 국외로 도피한 경우에도 똑같이 공소시효가 정지됩니다. 최근 살인을 저지르고 중국으로 달아났다가 공소시효가 끝난 줄 알고 19년 만에 나타난 이들이 구속된 사건도 있었죠. 이제 공소시효가 최대 25년까지 늘어난만큼 법의 처벌을 피하려면 남은 일생을 도망자의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폭력범죄로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13세 미만의 사람 또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는 공소시효 미적용
성폭력범죄의 경우 일반적인 형법 및 형사소송법의 범주 안에서 큰 맥락은 같이하지만 일부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내용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범죄와 함께 사람을 죽이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그 죄질이 무겁기 때문에 공소시효제도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13세 미만의 사람 또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행범죄도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이미 전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몇몇의 사건이 있었죠. 다시 생각해내기에도, 입에 담기도 끔찍한 사건들이었는데요. 사건 자체는 참담한 심정이지만 그 사건들을 계기로 13세 미만 사람 또는 장애인에 대한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등 성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폐지되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13세 이상 미성년자가 피해자라면?
공소시효 시작이 미뤄지고
죄를 증명할 과학적 증거가 있다면 공소시효 연장
반면 피해자가 13세 이상의 미성년자인 경우엔 어떨까요? 13세 이상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때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됩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 등 미성년자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로부터 가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피해 미성년자가 기존의 보호감독 관계로부터 독립하고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때를 성년이 된 때로 보고 공소시효의 시작 기준도 피해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때부터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DNA 증거 등 범인을 찾을 수 있고 그 죄를 증명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면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립과학수사단은 세계적으로도 권위를 인정받을 만큼 우수한 기술력을 쌓아왔습니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전과 과학수사의 개선으로 오래되거나 변질되어버린 혈액이나 정액에서도 DNA를 추출하여 범인을 특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법도 기술의 발전에 맞춰 개정된 것이죠.
현재 과학기술은 10억 분의 1 그램으로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안도감은 범죄 수사물을 다룬 드라마 <시그널>의 대사로 대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주 작은 혈액이라도 묻어있기만 하면 10년, 20년, 100년이 지나도 DNA 검출은 가능하다는 거야. 현대 의학이 피해자에게 준 선물이지”
글을 맺으며
여느 범죄가 다 그렇지만 특히 성범죄만큼은 피해자의 고통이 형용할 수 없이 큽니다. 그 만큼 성범죄에 대해서는 범죄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현실의 변화를 적기에 반영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성범죄는 형법뿐만 아니라 특별법에 있는 범죄만 해도 수십 개에 다르며, 각 범죄의 죄질에 따라 법정형과 시효가 모두 다릅니다.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정확한 검색도 쉽지 않고 법조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확신하기 어려운데요.
무엇보다 그러한 법규정과 판례들을 살펴보는 이유가 범죄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라면 입수한 정보들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조차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와 종류, 법적 쟁점사항과 대응전략을 짜는 것은 혼자 감당해내기에 버겁죠.
그럴 땐 법률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세요. 사실의 객관적 판단과 전략을 세우는 일들은 믿을 수 있는 전문가에게 맡겨놓고 남은 마음의 여력은 본인의 심리적 재활을 위해 다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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