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면서 가지 않을수록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요? 병원? 장례식장? 머릿속에서 많은 장소들이 떠오르지만 그중 경찰서를 빠뜨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경찰서는 왠지 모르게 험악할 것 같고 거친 느낌입니다.
포돌이와 포순이라는 경찰 마스코트에서 보이듯 경찰청은 경찰의 이미지를 대중 친화적으로 바꾸려 하고 다른 민원 업무들도 경찰서에서 하는 걸 생각하면 사실 경찰서는 생각보다 우리 일상과 가까운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범죄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되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되면 무심히 지나치던 경찰서들이 또 다르게 보이겠죠. 특히 성범죄의 경우 사건 자체가 민감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위축될 수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으로 고소를 했거나 고소를 당한 경우, 경찰조사는 길고 지난한 싸움의 첫 관문이 됩니다. 오늘은 경찰 조사 시 당황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경찰 조사 전,
사실관계 확인과 증거 준비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게 하려면 경찰서에 고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 피해자의 부모나 형제자매, 경찰이 대신 작성하여 제출할 수 있습니다.
고소장에는 고소인과 피고소인의 인적사항, 피해의 내용, 가해자의 처벌을 바란다는 명시적 의사표시만 있으면 됩니다. 만약 경찰이 고소장을 대신 작성할 경우에는 반드시 작성된 내용을 확인 후 접수해야 하고,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하고 고소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기 위해 고소장의 사본을 보관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면 1개월~2개월 이내에 경찰이 피해자를 소환하여 고소사실에 대해 조사합니다. 이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피의자로 소환하여 고소인이 제출한 고소장 내용과 고소인이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내용을 근거로 질문하고 조사하게 되는데요.
성범죄로 고소를 받았다며 경찰 출석을 요청받으면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철저한 준비 없이 경찰서에 출석하면 진술하면서도 횡설수설할 수 있겠지요.
말이 바뀌거나 진술 내용에 오류가 있을 경우 향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 조사에서의 진술은 사전에 꼼꼼하게 준비를 하고 임해야 하는데요. 가장 기본적인 준비는 진술 전 사건 당일에 있었던 모든 사실관계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고소장 확인 가능
피의자의 경우 경찰 조사 전에 고소인의 고소장 내용을 확인하는 것도 좋습니다. 정보공개포탈을 통해 고소장 정보공개신청을 하면 고소인의 고소장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보공개 신청 이후 열람까지는 1주일 이상이 소요될 수 있으니 일정을 잘 조정해서 고소의 세부 내용을 확인하면 내가 놓치고 있던 사실관계 등을 확인할 수 있겠지요.
본인에게 유리한 증거가 있다면 조사 때 가져가서 수사관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증거의 경우 수사관이 먼저 요청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나의 항변을 위해 적극적으로 준비해서 제출해야 합니다.
증거가 서류라면 원본은 직접 보관하고 가급적 복사본을 제출하는 것이 좋습니다. 증거가 물건이라면 수사관에게 제출 후 수령증을 받아서 보관해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성범죄로 피해를 받은 사람이나 예상치 못한 고소를 받은 사람이 이런 준비를 차근차근 완벽하게 할 정신이 어디 있겠어요? 아무리 심호흡을 하고 출석해도 막상 진술을 시작하고서는 횡설수설하고 뒤늦게 후회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경찰 조사에 임하기 전에 법률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고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진술하는 것이 좋을지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쉽지 않은 진술과 대질신문,
진술 거부할 수 있으나 신중해야
경찰은 고소인과 피의자에게서 각각 진술을 듣고 필요할 경우 대질신문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대질신문은 고소내용 중 중요한 부분에 대해 고소인과 피의자의 진술이 달라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때 양쪽의 말을 동시에 들어보고 누구 말이 진실인지를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성범죄의 경우 특히 이 대질신문은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진행하도록 하지만, 출석해야 할 경우 피해자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는 대질신문을 거절할 수도 있지만, 만약 대질신문 없이 피해자와 피의자 각각의 진술만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힘들면 가해자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가 되거나 형량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을 알면서도 쉽지 결정을 내릴 수 없기도 합니다. 사건 당시를 상기해서 진술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심지어 나를 고통으로 밀어 넣은 가해자와 마주하라니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요.
그래서 피해자의 경우 대질 신문 시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을 동석시키거나 피의자로부터 추가 보복을 받을 것을 막기 위해 수사기관에게 보호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술조서를 작성하거나 대질 신문하는 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수사과정에서 ‘진술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만 밝히면 됩니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할 경우 해당 회차의 조사는 바로 종결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이나 증거를 들어 항변할 기회도 사라지는 것이므로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성범죄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만으로도 처벌 가능
미숙한 대응은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일반적인 형사사건에서는 피해자 또는 피의자의 진술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습니다. 진술을 보강할 수 있는 증거가 반드시 필요하죠. 하지만 성범죄는 당사자 간의 내밀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수사하는 만큼 증거를 제 때, 충분하게 확보하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고 피의자가 어느 정도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인정 진술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수사관의 질문에 진술하고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조사 시 작성하는 진술조서는 그 자체로 유력한 증거가 되므로 진술을 완료한 후에는 진술조서를 꼼꼼하게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진술내용과 다르게 작성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정정요청을 해야 합니다.
피의자의 경우 계속 혐의를 부인하다가 진술을 번복하고 혐의를 인정하는 것은 향후 법원이 양형을 판단할 때 불리하게 작용될 수 있습니다. 반성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런 위험을 막기 위해서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일관된 진술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면 대질신문 등의 과정에서 변호인과 동행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고소와 경찰 조사가 시작됐다면 피의자와 피해자는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피의자의 경우 본인의 혐의가 없다 해도 고소인을 설득하기 위해 연락하는 시도나 연락 내용이 증거로 남아 향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을 맺으며
여러 번의 출석과 대질신문에 응해야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찰 조사는 성범죄의 피해를 주장하는 고소인이나 피의자 모두에게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특히 피해자의 경우 경찰 조사의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권리는 정당하게 행사하고 지켜내야지요. 수사관이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을 하거나 오히려 2차 가해를 가한다면 정당하게 항의하셔도 됩니다.
성범죄의 경우 피의자의 혐의가 인정되어 검찰로 넘어가는 경우뿐만 아니라 경찰 수사 단계에서 종결되는 사건일지라도 범죄가 될 만한 사실이 있었다는 사실은 법적 싸움에 그치지 않으니까요.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를 수동적 피해자에 그치지 않고 ‘성범죄 생존자’라고 지칭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경찰 조사 이후로도 기나긴 싸움이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권리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충분하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싸움을 씩씩하게 버텨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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