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작은 사건이 줄을 잇는 요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바로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 사건. 뉴스만 보고도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였는데요.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이슈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의 정당성 여부인데요. 변호사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슈들, 관련 문제들을 모아 과연 이 방식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해 정리해보고 객관적인 시각을 찾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출처 : 조성호 페이스북)
안산 대부도 살인사건 용의자, 조성호 긴급체포
➔ 5월 7일, 조성호 신상공개
지난 7일, 안산 대부도 토막살인사건의 피의자, 조성호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습니다. 긴급체포된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었죠. 후폭풍이 대단했습니다. 이름과 나이, 얼굴을 안 네티즌들은 너도 나도 조성호의 온라인 흔적으로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조성호는 물론 가족와 친구, 주변 지인들의 신상정보까지 노출이 되고 말았죠.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의 힘,
➔ 불에 기름을 부은 네티즌 수사대
20년 전인 1996년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화제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온라인이라 해봐야 PC통신이 전부였으니까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손 안에 전 세계 모든 정보를 넣고 다니는 2016년. 강력범죄자의 신상공개는 작은 단서만으로 많은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네티즌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살인 피의자 조성호의 과거기록은 물론, 가족의 신상과 친구, 심지어 전 여자친구의 신상정보까지 공유되고 있습니다.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 찬성과 반대, 막상막하인 여론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미 한국을 넘어 세계로 까지 퍼져 버린 개인신상정보. 많은 분들께서 여론은 <속이 시원하다>, <저런 나쁜 X은 얼굴이고 뭐가 다 까발려야 돼>라며 격한 찬성을 외칩니다. 저도 큰 범주 안에선 다르지 않습니다.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 위에 인권이라는 단어는 다소 어색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신상정보공개로 인한 <2차 피해>입니다. 일명 "신상털기"라고 부르는데요. 공개된 조성호의 가족은 물론 지인들까지 "살인자의 OO"이라는 오명으로 여러 피해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나 친구가 주인공이라고 가정해볼까요. 정신적인 피해는 물론 심한 경우 사회 적응 실패, 폭언과 욕설이라는 물리적 피해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예상이 아니라 실제 조성호의 가족과 지인들이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처음부터 다시..
➔ 강력범죄 피의자 신상공개의 목적은 무엇인가
목적은 단순합니다. "공익"을 위해서죠. 여기서 잠시 흉악 범죄자들의 신상공개가 명문화 된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관련 조항을 살펴보겠습니다.
제8조의2(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
①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특정강력범죄사건의 피의자의 얼굴, 성명 및 나이 등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 <개정 2011.9.15.>
1.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일 것
2. 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3.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할 것
4. 피의자가 「청소년 보호법」 제2조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아니할 것
② 제1항에 따라 공개를 할 때에는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 된다.
[본조신설 2010.4.15.]
간추려보면 강력범죄사건 중 충분한 증거가 있는 사건으로써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가 있을 때 신상을 공개한다는 건데요. 사실 좀 모호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어떨까요. 민주주의가 먼저 뿌리내친 국가들인 만큼 범죄자의 신상공개는 오래된 일인데요. 지금까지도 찬성과 반대의 여론이 팽팽히 맞서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명시나 표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짚어보자, 형사소송의 대원칙
➔ 무죄추정의 원칙
혹시 <무죄추정의 원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원칙인데요. 범죄자의 신상공개는 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목소리가 매우 거셉니다. 아직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서 조사 중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흉앙 범죄자로 신상이 공개되며 향후 죄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심지어 이 원칙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기도 합니다.
2012년 우려가 현실로.. 얼굴공개 후 무죄로 밝혀져
그래도 어느 정도 범인이 확실하니까 잡힌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고 경찰의 잘못된 판단에 성폭행, 그것도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파렴치범으로 몰린 J씨의 실제 이야깁니다.
조선 오보 피해자 “내가 얼굴공개 당해보니...” (전문보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 신상공개의 순기능을 간과할 수 없다
얘기가 너무 부정적으로 흘렀나요. 사실 신상공개는 크게 2가지 순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범죄억제 효과인데요. 일반 국민들이 범죄자들의 얼굴이 공개되는 걸 보면서 '아, 나도 신상이 공개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여죄파악에 용이하다는 점인데요. 얼굴이 공개되면 다른 사건의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알아보고 본인의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합니다.
➔ 소송의 미학의 2가지 바람
찬성과 반대. 두 가지 시선 모두 이해가 갑니다. 언뜻 보면 각을 세우고 있는 듯 하지만, 속속들이 들여다 보면 둘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마지막으로 제 의견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 흉악범죄자 신상공개의 일관된 적용
강력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사건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원영이 사건"입니다. 특례법 조문에서 규정하고 있는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자백까지한 상황.. 그리고 누가봐도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익을 우선시 해야 했던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앞날을 생각해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죠. 개인적으로 이런 사건들에도 신상공개는 일관적으로 해야 더 공정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2)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마련
이렇게 일관된 적용을 위해선 먼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강신명 경찰청장은 "구체적인 메뉴얼을 만들겠다"고 말했는데요. 매우 시급한 부분입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비추어 봤을 때, "신상공개결정위원회"의 논의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것 역시 어느 정도 모순이 있는 판단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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